양조장은 1902년도에 권 대표의 할아버지로부터 시작 되었다.
그 뒤로 권 대표의 큰아버지, 아버지에 이어 어 머니가 맡아 운영하다 1998년부터 권 대표가 운영 중 이다.
어릴 때부터 어머니 일을 도와주긴 했지만 이 일을 완전히 맡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.
수도권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구에 있던 사촌형을 도와 건설업을 하다 안동으로 돌아와야 했다.
어머니가 아픈 데다 양조장이 닫아야 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.
양조장이 사양길로 접어든 때였다.
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.
그 전까진 윗대에서 해오던 대로 했다면 그는 보다 전문적으로 만들고자 했다.
전문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, 책으로 공부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술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.
현대인의 입맛에 맞게,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로 만들려 애썼다.
하지만 어머니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.
어머니는 혹여나 새로 하는 일이 안될까 염려가 커 하던 대로 하자는 것이었다.
결국엔 권 대표의 의견대로 밀고 나갔고, 매출은 몇 배나 올랐다.
그제야 어머니도 인정해 주었다.
그럼에도 그는 술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.
배상면 전 국순당 회장에게 직접 배우며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.
그러다 발전을 위해 2014년에 지금의 위치로 공장을 이전 확장했다.
그 덕에 고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.
시내 술집에서 이곳 술이 최고라고 자랑 삼는 손님들을 우연히 만날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.
한동안 청와대에 만찬주로 납품도 했다.
회곡 양조장의 장점은 특수 종균을 배양할 수 있다는 데 있다.
상품 가치가 있으니 다른 양조장에 판매까지 한다.
한국식품연구원과 농촌진흥연 구소와 함께 진행하기도 하는 일이니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.
이곳 막걸리는 크게 달지 않고,
탄산이 그리 많지 않게 만든다.
그래서 맛이 묵직하고 뒤끝이 좋다고.
그의 술에 대한 이론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.
한 번은 양조장을 하는 한 어르신이 그에게 자네는 전통을 지켜야지, 하며 호통 아닌 호통을 쳤다.
하지만 그도 할 말이 있었다.
어르신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.
막걸리뿐 아니라 안동 소주와 약주도 만드는데,
요즘 들어 안동 소주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.
비단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렇다.
얼마 전, 권 대표는 미국의 120년 된 위스키 공장에 이곳 소주를 가져간 적이 있었다.
공장 주인이 증류전의 원액 맛을 보더니 소주가 훨씬 낫다는 게 아닌가.
위스키 공장 대표는 그가 언제 한국에 들어가는지 물으며 따라가겠다고 할 정도로 소주 맛에 반해버렸다.
그가 확신한 대로, 우리 소주의 맛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.
그뿐 아니라 올 8월부터는 두바이에도 수출을 시작했고,
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계약을 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.
지금도 원하는 술이 나올 때면 그렇게 기쁘다는 권 대표는
돈을 벌면 다시 좋은 술을 빚기 위해 투자하느라 돈을 크게 번 적이 없다고.
그의 술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함께 지켜보는 건 어떨까.